오리지널 된장녀의 비극 :: 2008/06/12 03:09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전라남도 순미향 대학에는 장학(醬學)과라는 것이 존재한다. 원래는 조리학과 과정 중 일부였지만 과 특성상 하나의 독립된 과로 분리되어 2년 동안 한국 전통의 발효 식품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습득하는 곳이다. 이론 과목으로는 콩의 특성 및 미생물의 활동 과정, 환경과 미생물, 메주의 보전과 관리 등이 있고 실습 과정으로는 메주 담그는 법, 간장 관리 및 된장의 활용, 고추장 실기 등이 있다. 그리고 졸업생에 한해서 3개월동안 전라남도 순창 지방에 내려가 인턴 과정을 밟게 한다.
장학과가 조리학과에서 독립하게 된 주요 원인은 한류붐으로 각종 발효 식품의 해외 수출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그 배면에는 순미향 대학의 초대 재단 이사장을 지낸 고 박천자 여사의 우리 발효 식품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집념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애초에 조리학과를 담당하던 교수 및 강사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염려하여 장학과의 분리를 크게 반대하였지만 고 박천자 여사의 저돌적인 업무 추진과 때마침 불어닥친 웰빙붐에 힘입어 어렵사리 정원 20명의 간촐한 과로 한국 장학의 이론및 실습의 체계화의 초석을 확립할 수 있었다.
고 박천자 여사는 비록 정원을 크게 늘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재단 이사장의 재량으로 순미향 대학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장학금 제도를 실시하였다. 전국에 있는 미각 및 과학 영재를 영입하여 재학 기간 내내 숙식 및 연구비를 따로 지원하였고 상위 1프로 학생에 한에서는 일본의 와쓰비 미생물 연구소 및 교토 지방의 전래 간장 제조 공장에 생활비 포함 전액 지원 유학까지 보내주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파격적인 장학 제도의 첫번째 수혜자가 된 학생은 고 박천자 여사의 손녀이자 초대 학장의 외동딸인 여은희씨였다.
어려서부터 고 박천자 여사로부터 엄격한 미각 영재 교육을 받아온 여은희씨는 그녀 나이 7세때 이미 후각만을 이용하여 장의 숙성 정도를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부친의 영향으로 이미 고등학교 2학년때 된장과 요구르트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활동 양상 비교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그 해 과학 영재로 과기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다.
간장, 고추장, 치즈, 요구르트, 김치, 청국장, 낫또 등 발효 식품 전반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여은희씨였지만 그녀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집중한 식품은 바로 된장이었다. 한국, 일본, 중국 동 아시아 3개국의 된장을 비교 분석하기 위에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중국과 티벳의 국경 지역까지 홀로 여행을 떠나서 된장의 중국 기원설을 정면으로 부정할만한 고문서를 입수하여 학계에 발표한 일은 아직까지 교수들을 통해 장학과에 내려져 오는 전설 중에 하나이다.
그때를 계기로 전세계 식품 및 미생물학과에 여은희 라는 이름이 깊숙이 각인되기 시작하였고, 독일 미생물학 연구소 유학 시절 그녀는 여은희 라는 본명대신 '된장 여' 라는 애칭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5년간의 독일 유학 기간 내내 '된장 여'라고 불리운 여은희씨는 결국 여은희 라는 본명보다 된장녀라는 애칭이 훨씬 익숙해졌고, 유학 기간 동안 만나 결혼한 독일 미생물학계의 권위자 드미뜨리 라흐노프 박사 역시 그와 그녀의 공저 '아시아의 장수 비밀 -된장-' 이라는 논문에서 그녀를 본명이 아닌 '된장녀'라는 애칭으로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국 된장의 맛과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여은희씨에게 '된장녀'라는 애칭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명예였고, 자신의 일생을 설명하는 키워드였던 것이다. 하지만 06년 한국 서울의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린 '발효 식품의 안정성'에 관한 국제 세미나의 발표를 위해 4년만에 입국한 여은희씨는 '된장녀'로 불리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질문 세례로 인해 큰 혼란과 슬픔에 빠지고 말았다.
'남자의 재력을 이용하여 분수에 넘치는 소비 생활을 하는 여자'를 가리켜 '된장녀'라고 부르는 조국의 현실 앞에 일생을 한국 발효 식품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의 일생 전체가 모욕당하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만 것이다.
이에 그녀는 논문 발표 자체를 포기하고는 그날로 독일에 돌아가서 자신이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재독 한인회를 중심으로 국내의 장 전문가 및 호텔 한식 조리사들이 독일로 날아들어가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자신이 일생동안 자랑스러워했던 '된장녀'라는 애칭이 한낯 조롱꺼리로 밖에 쓰이지 않는 현실을 그녀는 결코 납득하려고도 그리고 용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여은희 그리고 '된장녀'라는 한국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지금은 록산나 라흐노프 라는 이름으로 독일 뒤센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연구하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한국의 장학을 전 세계의 위대한 유산으로 승격시킬 수 있었던 한 천재를 잃고 말았다. 일부 네티즌들이 아무 생각없이 지은 '된장녀'라는 별칭이 한국 발효 식품계에 입힌 타격을 생각하면 본 필자는 아직도 분노를 삭힐 수 없으며 앞으로 또 제 2의 간장녀, 제 3의 고추장녀가 나와 한국 발효 식품계의 앞날을 가로막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 싹 다 거짓말...
Posted by 얼씩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