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들의 수다 :: 2008/10/01 00:39


오랜만에 고교 동창생 네 명이 신촌에서 회합을 가졌다.

몇 년의 영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영구 정착을 결정한 임군의 환영회를 겸한 자리였다. 네 명중 얼씩우님을 제외한 세 명은 현재 누군가의 남편 겸 누군가의 아빠라는 역할을 수행중이었다. 올해 봄에 결혼한 한군은 아내의 예정에 없던 임신에 저으기 당황하고 있었다. 두번 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지만 콘돔은 언제나 소중한 우리들의 친구인 것이다.

현재 박사 과정을 준비중이며 모 지방 대학의 시간 강사를 역임하고 있는 조군과 (자녀 2명) 보건 복지부 산하 모 연구소의 연구원에 내정되어 있는 임군 (자녀 1명) 둘 다 머리의 새치가 장난 아니었다. 진정 백발 노인네가 따로 없었다.

둘 다 얼씩우님의 윤기나는 흑발 머리를 한없이 부러워하며 새치가 나지 않는 비결을 물었다.

얼씩우님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비결이라고 시크하고 쿨하게 대답했다.

노량진에 pc방을 개업, 재수생들을 호령하며 리니지 게임을 밤낮으로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한군은 (자녀 1명)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더니 체중이 10킬로가 늘고 머리는 장발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전 개그 콘서트에 나오던 정형돈 같다는 이야기를 하자 한군은 그 이야기를 다름아닌 얼씩우님께 들었다는 사실에 꽤 쇼크를 받은 듯 하다. 그러면서 작년 조군 딸 돌잔치 때 찍은 얼씩우님의 사진을 건네주는데 과연 얼씩우님은 누군가를 정형돈이라고 놀릴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급히 사과하고 사진은 소각했다.

본격적인 회합의 한가운데 화제는 난데없이 음모에 난 새치 이야기로 집중되었다.

네 명 중 한군을 제외한 세 명은 음모에 새치가 난 경험이 있었다. 무성한 음모 사이 -다행스럽게도 네 명 다 아직은 탈모와 인연을 맺지 않은 상태이다. 머리 탈모와 음모 양의 관계는 명확치 않지만- 수줍은 듯 순백의 몸을 드러낸 하얀 터럭을 발견하는 순간 찾아오는 묘한 처량함에 대해 다들 나름대로 격변을 쏟아낸다. 특히 음모에 난 새치를 솎어낸 경험이 가장 잦은 임군이 (3회) 가장 격정적으로 심경을 토로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던 우리들은 아마 17년이 지나서 자신들의 신촌의 어느 민속주점에 모여 음모에 난 새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동안 독실한 신자이자 목사님을 장인어른으로 두고 있는 조군과 인격신의 존재를 신뢰하지 않는 얼씩우님께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주제로 종교에 대해 이바구를 펼쳤고, 새로 수유리 쪽에 전세를 들어가는 임군과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한군이 서울 집값과 종부세에 관해 가볍게 한담, 주제는 다시 영국의 국민연금 제도와 의료 보험 제도로 옮겨갔다가 참여 정부 시절의 보건 복지 분야의 발전 정도로 귀속되었다. 그리고 회합은 얼씩우님의 이명박이 얼마나 무능하고 비열하며 그가 임기 동안 우리 삶의 질을 얼마나 형편없이 떨어뜨릴 것인가에 대한 저주로 화려하게 마무리 되었다.

회합이 끝나고 언제 가족 모임으로 속초의 모 군부대에 근무하고 있는 김군네에 놀러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임무임을 네 명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막차를 놓친 얼씩우님은 모 찜질방에서 숙면을 취하기로 결정, 카운터에서 열쇠를 받는데 열쇠 번호가 공교롭게도 747이었다.

아 이명박과 얼씩우님은 운명의 라이벌인가 보다.

새벽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얼씩우님께서는 문득 고등학교 시절을 반추해 보았다. 하교 후 자주 놀러가던 고수부지,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그 때의 소년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가? 소년들의 대화는 어제 모인 중년남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 걸까? 그 순간 지하철은 다시 터널 안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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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1 00:39 2008/10/01 00:39

Posted by 얼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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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달걀 | 2008/10/01 01: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명박은 개새끼!
    욕은 이렇게 시원하게 해주세요. 뒤끝 걱정은 마시고요.
    호스팅 회사는 영국회사이며 서버는 미국에 있고 아무런 인터넷 회사와 연결되어 있지도 않으니 양껏 시원하게 욕해도 되요.

    명바기 몽둥이는 잘쓸지 몰라도 머리 쓸 줄은 모르니 걱정은 안하셔도 되고요.

    • 얼씩우 | 2008/10/01 06:03 | PERMALINK | EDIT/DEL

      어 블로거 운영자들끼리 리플 문답을 하는건 너무 초라해보이니까 하고 싶은 말씀은 msn을 이용해 주세요 (__)

  • 날달걀 | 2008/10/01 23: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해하게 했다면 죄송해요. 제 말투에서 아시겠지만, 저는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말이였답니다. 억씩우는 그 중에 물론 한 명이긴 하지만요.

    요지는 요. 욕은 씨원하게 쎄우세요. 뒷끝은 걱정 마시고.

    • 얼씩우 | 2008/10/02 01:00 | PERMALINK | EDIT/DEL

      어 그러나 이 블로그를 찾아주는 진실한 인간 방문객은 많아봤자 하루 열명 안짝인 걸요. 불특정다수라고 하셔봤자 날달걀님 리플을 성의있게 읽는건 아마 저 정도일 거예요. 어 그것과는 상관없이 주신 말씀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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